정자 은행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을 언제 했는지 모르겠다.
서울대 난임 내분비 펠로우를 했을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연세대 박사 과정 대학원을 다닐 때였을가? 국생연에서 생명윤리 관련 미팅을 했을 때였을까?
막상 생각해보니 나에게 정자은행이 그리 확 다가올 이벤트는 없었던 것 같다.
봉직의하면서 씨-병원에서 정자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인상에 남았나 싶다.
정자 은행 설립 초기엔 나의 지인들이 그 일을 왜 하나 하는 말을 많이 했다.
난임 환자에 집중하라고, 정자은행과 같은 3rd party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그때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서울IVF 설립 초기 다른 난임 의원과 다른 칼라로 시작해보고 싶었고
운영 초기 부터 무정자증 난임 부부가 오는 것도 아니기에, 내가 하든 말든 크게 상관치 않는 분위기였다.
정자 은행이 잘 운영될려면 중요한 것은 기증자를 많이 확보하는 게 아니다고 생각했다.
좋은 기증자 정보를 확보하는 게 정답이다고 방향을 잡았다.
예측할 수 있는 정보를 만들어 믿음직한 익명화 과정을 걸친 후 기증 정자 사용 난임 부부에게 전달하는 데 최종 목표를 잡았다.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기증자가 많으면 좋지만 우리 나라에선 정자를 기증할려는 분들이 많지 않다.
예전에야 뭐도 모르고 의대생이 기증했지만 지금에야..
또한 아무리 선의로 시작해도 기증을 위해 최대 5번은 인천에 있는 우리 정자 은행에 방문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는 일이다.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정자 기증 적격자가 되기도 어렵다.
최소 조건도 까다로운데
서울 ivf 정자 은행 자체 조건도 있어
이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통계를 내보니 약 30% 정도가 기증자 적격 기준에 든다.
운영 초기엔 기증자가 많지도 않았고
기증자 조건에 통과하는 사람도 적어 초기 은행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은행이란, 모여야 하지만 또한 쓰여져야 한다.
모이지도 않았고 쓰겠다는 사람도 적었다.
드물게 쓰고 싶은 사람이 아름아름 왔지만
아직 많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돌아가는 일이 많았다.
기대와 달리 정자 은행은 그렇게 천천히 모양이 만들어져갔다.
서울 ivf 정자 은행은 기증자 정보를 잘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 집중했다.
나름 업데이트도 많이 했는데
익명화 방법도 "책"에서 알려준 방법을 따라 하다, 최근에 우리 은행에 맞게 바꾸었다.
개인정보 담당자도 특정하고 다른 사람들은 못보게 하고... (솔직히 관심이 없는 듯도 싶었다.)
동의서와 서식지를 바꾸고 정리되는데 한 2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변수가 끝임없이 생겨서 이를 업데이트 하는 일도 번잡한 업무였다.
지금도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많은 변수가 계속 다가오고 있다.
정자은행 운영위도 만들고, 기관위원회에 분기별 보고하고
기관위원회 보고는 다소 까다로운데
윤리위원회 위원분들이 정말 성심껏 도와주셨다.
정자은행이 잘 운영되길 바라기도 하셨지만, 혹시 있을줄 모르는 오해 소지를 줄이기 위해 세세한 것도 봐주셨다.
기증 정자가 어느 정도 쌓이는데 시간은 약 3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 기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었는데,
"사유리"분의 임신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
"사유리"분은 정작 그리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분의 출산은 대중적 관심도를 올렸다.
엄청난 호응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증 정자 필요 난임 부부에겐 축복과 같은 일이었다.
그 이후 몇달 동안 정자 기증자가 눈에 띄게 늘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게 반향이라도 얻을 수 있어 너무 고마웠다.
언제 한번 만나면 고맙다고 악수라도 한번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정자 은행에 광고도 부탁드린다고 하고 싶다.
"고마워요. 사유리" 저희 기증 정자 관련한 일에 꾸준한 관심 주세요.
이런 저런 우여곡절과 시간이 지난 후
정자 은행은 공급적인 측면에서 안정적인 곡선을 타기 시작하면서, 난임 부부가 병원에 내원하기 시작했다.
물론 난임 부부가 아닌 분들도 왔다.
정자 은행 이용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나같이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케이스 하나 하나가 소중했고 기억에도 많이 남는다.
정자 수증 과정에 이루어지는 내용들을 반추해보니, 정자 은행을 하기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난임 의사로서 아련한 아픔을 가지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임신율도 좋다.
대부분 1~2번의 시도에 임신이 된다.
임신이 되면 아내가 아닌, 남편이 정말 좋아한다.
눈물이 글썽이는 것은 보통이고 통곡을 한다. 그 마음을 알듯도 싶지만,,,
주제넘는 동감일까봐 조심스럽다.
물론 임신이 잘 되지 않으면 의혹에 찬 눈으로 나를 보기 십상이다.
왜 문제는 풀렸는데 임신이 되지 않는거죠?
남성측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임신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는 눈빛.
그렇지만 임신이라는게... 정말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결론을 말하면, 대부분 된다.
지금까지 완전 어려운 케이스가 아닌 경우, 대부분 되었다.
그래보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정자은행인 듯 싶다.
익명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기증자분들에게 이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 다시 하고 싶다.
당신들의 선한 의도가 얼마나 위대한지 계속 증명해보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