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마다 다른 색깔이 있습니다.
언뜻 색깔이 비슷해보이더라도 자세히 보면 밀도라도 다르지요.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성격의 남편,
얼추 차이가 나지 않는 월수입
그렇지만 확연히 다른 성격과 반응 양상이 저를 어리둥절하게 하지요.
저도 난임 환자가 오면 통상적인 검사와 치료를 우선 합니다.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1~2차례 해보고 그래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어... 이상하다.
왜 이렇게 임신이 되지 않지
이 분은 임신이 되지 않을 분이 아닌데...하면서 차트를 찬찬히 꼽십어 보기 시작합니다.
통상의 치료로는 임신이 되지 않는
독특한 분이 되는 것이지요.
젊은 나이
특별할 것 없는 정액 검사 결과
괜찮아 보이는 난소 반응
채취된 난자 수 그럭 저럭
수준급의 OMR (oocyte maturity ratio, 채취된 난자에서 성숙 난자의 비율)
좋은 수치의 수정 성공율과 3일째 배아 발달 양상
별 무리 없이 진행된 배아이식
신선주기 배아이식 후 임신 반응 검사에서 음성
해동배아이식에서도 음성
2차례의 배아이식 후 심리적 탈진
낙담.
의료진에 대한 실망
병원을 바꿀까 고민
난처해진 나
남아 있는 배아는 겨우 3개
당분간 쉬고 오겠다고 떠나버린 환자
몇개월 후
다시 내원해서
남아 있는 배아 3개 중 2개 사용
해동 배아 이식에서 임신 반응 검사 또 다시 음성
점점
임신을 꼭 해야 하나요?
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한 환자
궁색해져 점점 고개가 숙여지기 시작한 나.
남아 있는 배아는 단 1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는 환자
마지막 한 번의 해동 배아 이식 주기
이 한번의 기회를 살려야 (적어도 임신 수치는 보여줘야)
자신들이 살아갈
삶의 한페이지에
실패 또는 낙담, 포기라는 글자를
적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전 점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지요.
과감하게
(솔직히 이게 마지막 내가 가지고 있는 카드다 싶은 방법으로)
해동 배아 이식 전
자궁내막 전처치 방법을 완전 변경했습니다.
다소 번거롭지만
자신의 호르몬를 이용한
자궁내막 수용성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
적절한 약물 투여와
가장 가능성 있는 시기에
배아 이식 날짜를 잡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배아 이식이 약간 꺼림찍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안될려나...
이거 이렇게 되면 약간 불안한데 하면서
2주를 보냈습니다.
환자는
저랑 다른 차원의 2주를 보냈겠지요.
그리고
임신 반응 검사 당일날
내원한 환자 부부
소변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나에게 웃는게...
웃는 것이 아닌 듯한 조바심이 묻어난 얼굴 표정
20분 후
드르륵하면서
임신 결과지가 나오는 소리
환자는 모르지만
저는 임신 반응 검사가 나왔구나..
이건 정말 돼야 하는데...
하면서
간호사가 결과지를 가져오기를 기다렸지요.
제가 가서 볼 수 있는데
소심하게
혹시나
촐랑되었다가
부정이라도 탈까봐..
그런데
임신이 되셨습니다.
아.
울컥했지요.
정말 울컥했습니다.
솔직히 이분들과 헤어지고 싶었습니다.
웃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헤어져
다시는 보기 싫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우리
다시는 보지 마요.
건강하게 잘 키워서
만삭 분만도 하시고
건강한 아이로 잘 키워서
사회에 봉사시켜주세요.
그리고 그 아이
난임 의사 시키지 마세요.
혹시 저랑 얽힐까봐 걱정되서 하는 말이에요.
아니... 뭐 이건 오바인가요?
그래도 기쁜 마음에
저도 오바 한번 해볼께요.
정말 기쁩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보람이 되셨습니다.
건강하게 잘 키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