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뭐든 쉽게 이루는 행운을 타고났지만, 매 순간이 도전이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노력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이번에는 다낭성난소증후군과 희소 정자증이라는 이중의 장애물에 맞선 한 부부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 부부는 임신에 도달하기 위해서 남편의 희소정자증과 아내의 다낭성난소증후군을 해결해야 했다. 남편의 정자 상태는 거의 무정자증에 가까워 이 부부 난임의 주요 원인으로 생각되었으나 아내 역시 다낭성난소증후군으로 인해 배란이 원활하지 않아 독립 변수로 생각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서로의 문제를 배려하고 지지하는 분위기로 이어져 만날 때마다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통상 남성 측 요인이 아주 심하지 않다면 인공수정을 먼저 하고 시험관 시술을 선택하게 된다. 희소 정자에다 다낭성 난소 소견이므로 임신율이 그리 높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험관을 시작할 땐 프로게스테론 전처치 프로토콜(PPOS)로 난소 자극을 시작했는데 난소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은근히 기대가 생겼다. 다행히 채취한 난자는 양호했고, 남편이 제공한 적은 수의 신선 정자로 배아 생성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담당 생배실 실장님이 손수 키워주신 덕분에 4개의 5일 배아를 만들어 총 3번의 이식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게스테론 전처치 프로토콜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의 배란 억제를 위해 프로게스테론과 성성자극호르몬을 동시에 투여하는 새로운 난소 자극 프로토콜이다.
난자 채취 후에도 아내는 생리가 나오지 않는 전형적인 다낭성난소증후군 증상을 보였다. 생리가 나오지 않아 다소 조바심이 있었지만 항상 이 부부는 즐거웠다. “잘 될 거예요. 파이팅” 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즐거웠다. 그 부부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힘들어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생리를 나오게 하기 위해 호르몬 제제를 투여하였고, 이후 자궁내막 전처치로 배아 수용성이 확보된 것 같아 배아 이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식 당시 임신 실패 걱정에 아내는 불안해했지만, 배아 이식 베드 옆에 앉은 남편이랑 은근히 주파수를 잘 맞추는 듯싶었다. 다행히 이식 과정도 수월했다.
이식 배아는 겉보기 등급이 좋은 상태였는데, 그 덕분인지 첫 착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착상 후에 초기 hCG 수치가 낮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정상적인 상승 소견을 보였다. 결국 안정적으로 아기집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분만 후 예쁜 눈을 가진 아이의 사진을 들고 우리 의원에 다시 찾아왔는데, “오늘 이 순간이 올 줄 몰랐어요. 제가 아이를 데리고 원장님을 만날 수 있다니…” 하면서 행복해했다. 진료 환자에게 감정 이입이 되면 다음 환자를 볼 때 힘들어지는데도 그 순간만큼은 감정이 벅차올랐다.
다른 한 사례는, 매우 마른 체격의 여성으로 초음파 소견에서 다낭성난소증후군 소견을 가지신 분이다. 이른바 마른 다낭성난소증후군 소견을 가진 분이다. 이 부부는 이미 여러 차례 자연 임신 시도를 해왔으나 계속 실패를 거듭하며 약간의 불안감과 우울감이 있었다. 아내는 BMI 17.63kg/m²으로 몸무게가 40kg 후반대에 불과해 일견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강한 젊은 여성으로 보였다. 다만 남성 호르몬 수치가 다소 낮은 소견을 보여 다낭성난소증후군 중 특이 아형 (subtype)을 보이는 분이었다. DHEA 수치를 적정 수준까지 올리기 위한 호르몬 전처리 뒤 난소를 자극하여 28개의 난자를 확보하게 되었다. 난소 과자극 위험이 있었으나 과자극 증후군에 필요한 몇몇 조치를 선제적으로 적용하여 큰 합병증 없이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좋은 배아를 선별 냉동해 두었고, 그동안 엄청난 일을 한 난소가 쉴 수 있도록 적절한 휴식기를 가진 뒤 해동 배아를 이식하여 임신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다낭성난소증후군임에도 남성 호르몬 수치가 낮은 경우 이를 잘 구분하여 전처치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해도 좋지 않은 난자만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적절한 호르몬 전처리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고, 부부에겐 "기다리면 좋은 일이 온다"는 성공의 경험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결혼 후 7년간 임신이 되지 않아 감정적으로 지친 부부 이야기도 있다. 이 부부는 여러 차례의 인공수정을 실패하여 시험관 시술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 난자 채취 후 PGT-A 검사를 시행하여 정상 배아를 확보했지만, 정상 배아 이식에서도 임신 수치를 보지 못했다. 당시 왜 이런 일이 이 부부에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자책감과 괴로움에 빠졌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남은 배아를 이식하여 임신에 성공하였다. 적절한 내막이 좋은 배아를 품어줘야 임신에 성공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난임 시술 결과는 정말 알 수 없는 것 같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 결국 성공한 부부들에겐 나를 믿고 지지해 준 마음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도 안개 속에서 헤매면서 반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려는 분들에겐 응원이라도 보내고 싶다. 우리가 내딛고 있는 길이 임신 성공일지, 다시 임신 실패이지 모르지만, 같이 가봐요. 아니면 또 가지요. 가보지 않는 것보다 더 나아요. 우린 뭔가를 하고 있잖아요. 파이팅.
출처 : https://health.chosun.com/healthyLife/column_view.jsp?idx=11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