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달에 뵌 분이지요.
나이가 42세...
늦게 결혼하셔서 저를 보곤 무척 쑥쓰러워하셨습니다.
당신이 늦게 결혼했고 혈압도 조금 있고,
그럼에도 아이를 원한다는 사실에 대해 염치없지 않나 하는 느낌까지
제가 느낄 정도였던 것 같아요.
살짝 몸무게도 있어 BMI가 약간 높았지만, 워낙 좋은 느낌을 받아 강하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시험관해야 합니다. 이 나이엔 임신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것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못했어요.
그래서 외래 첫 방문날
"그럼 일단 검사도 해봐야 하니, 부부관계도 잡아보고" 하면서 조금 soft하게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느끼는 다급함" vs. "처음 내원한 난임 여성이 느끼는 위중도" 사이에 거리가 크면 클수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거든요.
아뭏튼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했지요.
초음파를 보니 선근증도 있어서 저는 조급했지만,
임신이라는 것이
의료진이 뚝딱 만드는 제품이 아니라
난임 부부와 함께 만들어가는 생명이기에
조급함이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이 부부는 난임 검사를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고령의 여성
고령의 남성
선근증
일측 나팔관 이상
남성 정액 검사 이상
고혈압
클로미펜 부작용
드시고 있는 건기식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지만
나팔관 검사를 시행한 클로미펜 복용 주기에서 자연 임신 실패
대신
고혈압약은 복용하기 시작했고 질염 치료도 병행해서
저랑 같이 하나씩 하나씩 안개를 걷어냈기 시작했지요.
바로 시험관으로 가지 않고
그래도 인공수정은 한번 해보고 시험관 가보자고 의견 일치를 이루고
시행했던
주사 단독 인공수정(#1)에서 임신 실패
(주사 맞으면서 처치는 느낌을 견뎌내면서 시술까지 도달했는데,
막상 인공수정 당일 남편 정자가 극히 좋지 않아 (전처치 후 정자 운동성 7%)
임신이 되면 정말 행운이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인공 수정 실패 후 시험관 이야기를 꺼내보니
같이 오신 남편이
"정말 이번에는 제가 너무 힘들었어요. 다음엔 제가 몸 한번 열심히 만들어보겠습니다. 한번만 더 인공수정으로 진행해주세요. 부탁입니다."
옆에 있는 아내는 수줍게 웃고 계시고
저는 당황했지만...
그래도 두 분이 만들어가는 임신이기에
전 다시 인공수정에 동의했습니다. '이번에도 잘 안될텐데...'하면서
이어서 시행했던
주사 단독 인공수정(#2)에서 임신 성공
(주사 용량을 올렸지만, 성장 난포 수의 차이는 그리 나지 않았던 주기였는데, 남편 정액이 거의 2배 가까이 좋아지는 지표를 보였지요)
시술 당시 자궁경부에 인공수정 카테터가 막혀 힘들게 자궁강 진입이 가능했던 기억도 나네요.
정말 수월하게 임신한 듯 보이지만
저희쪽으로는 쉽게 넘기기 힘든 어려움을 이겨내신 거죠.
한편으로는 임신의 한 축인 남편의 의견이
현실에서 확인되는 희열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축하해요.
의학적 지식은 정말 지식일 뿐
실제 현실로 이어지는 것은 지식 이외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